캘커타에서 가장 유명한 Mother Teresa House이었다.
인도에 가기 전부터 우리 모두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 너무 가고 싶어했었는데
드디어 캘커타에 도착한 지 근 한 달만에 그 유명한 곳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맨 처음에는 오리엔테이션을 받아야 한다.
세계 각국에서 봉사자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프랑스어, 스페인어, 한국어, 중국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 오리엔테이션이 제공된다.
나는 대다수가 미국인으로 이루어진 우리팀과 함께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한국어그룹 대신 영어그룹에 앉아 있었는데,
한국어 그룹에 앉아 계시는 한국인 봉사자분들을 보고
머나먼 인도 땅에서 조국의 동포를 본 탓인지
나도 모르게 너무 반가운 마음이 들고 그 곳에 끼고 싶었다.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구나)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는 봉사할 수 있는 곳이 총 다섯 곳이 있는데,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명을 듣고 자신이 봉사하고 싶은 곳을 선택하면 된다.
우리 팀은 Shanti Dan(정신지체 여성을 돌보는 곳)과
Kali Ghat(임종을 앞둔 환자를 돌보는 곳)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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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테이션 후 봉사할 곳을 선택하면 이렇게 봉사증과 펜던트를 준다. 이걸 받고 너무 자랑스러워서 사진으로 남겼다. :P |
우리는 새벽 다섯시에 호스텔에서 나서 5시 반에 그 곳에 도착했다.
매일 아침 6시부터 모든 봉사자들과 수녀님들이 함께 미사를 드린다.
미사 참석은 필수가 아니지만 정말 많은 봉사자들이 참석해 항상 북적인다.
마더 테레사가 미사를 드렸던 바로 그 곳에서
세계 각국에서 모여 온 봉사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비록 미사를 드려본 적이 없어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헷갈리긴 했지만...
미사가 끝난 뒤, 모두 함께 아침을 먹는다.
아침 식사는 식빵 한 조각, 바나나, 그리고 chai(차이)!
(잠깐 설명하자면 인도에서 정말 지겹도록 마신 차이는 '차'를 의미하며,
우리나라나 미국의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차이티와는 차원이 다르게 맛있다!
홍차를 우유와 함께 다양한 향신료를 넣어 냄비에 끓여마신다.
인도 사람들은 하루에 10번 이상 마실 정도로 차이는 그들의 생활의 큰 일부이다.
인도에서는 어딜 가든 사람들이 차이를 마시고 있고
차이 장사꾼의 "차이! 차이!"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침 식사를 한 뒤, Shanti Dan으로 이동했다.
Shanti Dan은 정신지체가 있는 모든 연령층의 여성들을 보살피는 곳이다.
1층은 어린 아이들로, 2층은 성인 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나는 첫 날엔 1층에서, 둘째 날엔 2층에서 일했다.
Shanti Dan에서 일한 날,
나는 진정한 의미의 "섬김"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마음대로 움직이고 밥을 먹고 목욕을 하고
화장실에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봉사자들이 모두 도와줘야 한다.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놀다가
휠체어를 끌고 다니며 산책을 시켜주기도 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직접 밥을 떠서 먹여준다.
밥을 먹이는 일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얼굴을 움직이고 입을 벌렸다 다무는 것이 자유롭지 않은 아이들은
밥을 제대로 입에 담고 있거나 삼키는 것조차 쉽지 않다.
따라서 흘린 음식을 다 닦아주고 음식을 제대로 삼킬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먹여주어야 한다.
이렇게 밥을 먹고 나면
아이들이 깨끗이 씻을 시간이다!
화장실에 가야 하는 아이들은 데리고 화장실을 가기도 한다.
이 또한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집중력과 정성을 들여서 바닥에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도와주어야 한다.
나는 이 곳에서 오전 반나절만 일했는데도
모든 일과가 끝나고 나니 몸이 너덜너덜해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서 만난 홍콩에서 온 한 여성은
2년동안 이 곳에서 매일매일 봉사하고 있다고 했다.
수년 전 shanti dan에서 단기 봉사를 했는데,
홍콩으로 돌아가서도 계속 이 곳에 다시 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돌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비록 사람들의 도움을 항상 필요로 하지만
이 곳의 아이들은 사랑이 넘친다.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언티! 언티!"하며 따라다니고
꼭 안기거나 손을 잡고 놓지 않는다.
shanti dan에서 보낸 첫 날,
여러모로 미숙해서 아이들에게 도움은 커녕
오히려 불편만 끼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었지만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오히려 마음은 더 힐링이 된 것 같았다.
둘째 날은 성인 여성이 있는 2층에서 봉사를 했다.
2층에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이
traumatic experience, 정신적 외상을 초래하는 경험으로
후천적으로 정신지체를 얻은 사람들이다.
2층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엄마나 할머니 뻘 되시는
나보다 훨씬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나를 보더니 "언티! 언티!"하면서 손을 잡았다.
그리고 갑자기 내 발에 키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놀랬는데
알고 보니 그 분들은 봉사자들의 발에 키스하는 인사를 하면서
고마움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곳에서 나는
남편에게 심한 학대를 받고 몸에 칼자국이 가득한 여성을 만났다.
팔에 난 상처를 가리키면서 벵갈리어로 뭐라뭐라 하길래
거기서 오래 일한 봉사자에게 물어보니
자신이 남편에게 당한 이야기를 해 주는 거라고 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내가 그 곳에서 만난 여성들이 대부분
사연이 있는 눈을 하고 있었다.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분명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조금이나마 옆에 있어주고 함께 산책도 하고
밥도 같이 먹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 누구보다 사랑이 많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여성들과 보낸
shanti dan에서의 시간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 날은 kali ghat에서 봉사했다.
kali ghat는 마더테레사가 죽기 직전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장소라고 한다.
칼리가트에 대해 조금 설명하자면,
"1952년에 문을 연 임종의 집 '칼리가트'는
원래 무슬림의 죽음의 여신 칼리의 신전이었다.
캘커타의 대표적 빈민가이자 사창가인 이곳은
길가에서 노숙하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방글라데시 및 뱅골 주의 모든 유민들이 몰려드는 캘커타는
총 인구 천만 명의 10분의 1인 약 백만 명 이상이 집 없이 거리에서 살아간다.
칼리 신전 앞에서 죽기 직전의 여자 환자를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목욕을 시키고 조용히 임종을 지키던 마더 테레사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사람을 더러운 도랑 속에서
저렇게 비참하게 죽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안락하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보살펴 주기로 했다.
그렇게 지어진 집이 칼리가트, 임종의 집이다."
{마더테레사 111展 : 위로의 샘 p.74}
임종의 집인 만큼 kali ghat는 들어가자마자
엄숙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환자의 대부분이 침대에 누워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침대마다 돌아가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언어를
그들은 나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대화가 그다지 깊이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는 몇 개의 벵갈리 단어들을 섞어서
몸짓발짓으로 이야기했다.
막상 나에게 무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폭포수같이 쏟아낼 때면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 밖에 할 수 없었지만...
하지만 인상을 찌푸리고
침대에 누워만 계시던 할머니들이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안아 주자
쑥스럽게 씩 웃는 모습을 보면
사랑을 표현하는 데는 언어의 장벽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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